Coaches’ Chat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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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CAL EDU와 함께 하게 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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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me CAL EDU
  • Date 23-05-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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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쌤]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지만, 저의 개인적인 삶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었습니다. 프리랜서 통역번역 일을 맡고 있던 저에게 VIP 통역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일을 계기로 많은 기업체 강의를 맡게 되면서 저라는 사람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높아진 몸값으로 전문 학원계에도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고, 태은쌤과 재은쌤같은 훌륭한 학생들을 만나서 진학에 성공시키는 보람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반에 7,8명.. 그 모든 학생들이 다 인근 중학교의 전교 1,2등뿐이었던 그 20대 초반의 열정적인 시간들은 지금의 제가 있게 해준 시작이었고,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모두가 부러워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교육이라는 그 마법 같은 단어가 주는 힘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죠. 중학교 때 제자들이 또 특목고에 영재고에 진학하여 명문대로 향한 여정에 한 번 더 합류하게 되면서 그들의 성장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제 그때의 제자들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학부모가 되어가고 있으니 어쩌면 이제 그들이 오히려 저보다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그렇게 저는 지난 40여 년 인생 중에 20년 이상을 한나쌤으로 불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조금만 더 그 이름으로 불리며 조금 더 많은 학생들의 인생을 좀 더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주는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제가 학생이었을 때 저를 무조건적으로 도와주신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7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부터 저를 딸처럼 아껴주시고 도와주셨던 많은 미국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지금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들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저희 선생님들이십니다. 이런저런 이유와 계기로 저희 회사와 가족의 인연을 맺은 우리 선생님들은 이심전심이라는 말로는 그 깊이를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매우 끈끈하고 특수한 관계의 사람들이어서 학생들에 대한 마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따뜻하고 멋진 사람들입니다. 개개인의 매력 발산이 대체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매해, 매번 놀라게 하는 참 재능 많고 마음씨 좋은 우리 선생님들과 같은 꿈을 꿀 수 있어서 .. 그리고 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같은 일을 매해 현실로 만들어내는 그런 막강한 드림팀이 될 수 있어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CAL EDU는 누군가가 설립하고 누군가가 협력하는 곳이 아닌 모두가 두 팔 벌려 학생들을 환영하고 함께 품어주고 성장시켜 내보내는 그런 양육 기관입니다. 저는 그 기관의 설립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함께해 주시는 코치들에게 늘 무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CAL EDU 가 바로 그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Sarah 쌤]
ESL Lab Inc was registered as a corporation in the State of California, and in 2011, my sister Hannah and I founded what is now known as CAL EDU. When we founded the company, the focus was mainly going to be in Education Consultation, Study Abroad, and Language Acquisition - which was how “ESL Lab Inc” was created. We soon discovered though, that ESL suggested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to most people. After several name changes, now CAL EDU stands for California Accelerated Learning - which the acronyms accurately describe our mission and purpose.

After 10 years in business, I am so grateful to have grown and developed into this solid educational institution where we proudly have a team of the most intelligent, caring, and passionate coaches to work with our students who are privileged to have enrolled with us. As one of the persons who have founded the institution for many talented and dedicated staff and family members to be able to come together and join, I am a proud founder and will continue to work hard to leave CAL EDU as a legacy for years to come.



[J 쌤]
My story with CAL EDU began, like most things, by beautiful chance. It all started soon after the company was founded and first started doing business in 2011 – back then, as ESL Lab, Inc. At the time, I was a student myself at MiraCosta Community College, in Oceanside, California, where most of our students over the years have completed their own college coursework. Several weeks into one of my classes that fall semester, we were assigned a group project; that’s how I met our CEO, Hannah Jung, who was taking the course with the company’s first two college students, Euichol (Richard) and Juhee (Julie), to get to know the classes at the school and ensure their success.

In these early days as ESL Lab, Inc., CAL EDU focused on two main programs: the Transfer Success Program (TSP) and the Language Success Program (LSP). Richard and Julie were part of the TSP, which meant they took college classes at MiraCosta with the goal of transferring into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 to complete a four-year degree at UCLA or UC Berkeley. As a college student and retail employee myself, I wasn’t equipped to help CAL EDU as a teacher – but that’s where the LSP appeared. When we all came together for that group project in class, Hannah told the rest of us in our six-person team that she was looking for people to help the two students in the language program – Ted and Diane  – develop their English through conversation with Americans. I volunteered, alongside the daughter of one of our groupmates from that same project.

While I did not enter the CAL EDU family with the intent of being a student, my perspective and dreams were likewise expanded; the rest of that fall semester produced invaluable memories for me and laid the foundation for one of the most powerful and best transitions of my life. Our founders, Hannah and her sister Sarah, as well as Hannah’s husband Jun, welcomed me into the home they shared with these students in pursuit of this new enterprise. Over time, as I conversed with Ted and Diane twice a week in two-hour sessions, I also absorbed Hannah and Sarah’s vision for helping and elevating students on their road to a successful future. Through all these conversations, my exposure to South Korean culture as part of this community, and the passion of all those involved, I felt more and more at home.

As the semester wound down, and the page turned to 2012, Hannah expressed that she was looking to hire someone for a full-time position in support of the four new students who were joining CAL EDU’s language and transfer programs that spring. The appeal of helping students enrich their lives on their path towards their dreams was already sinking its hooks into me, and I was happy to pursue the opportunity she presented. From learning to appreciate photographic images in college art class to bi-weekly late night conversations after work and school and the more daily dialogue and academic support that followed, my entrance to teaching was far from expected; but it simultaneously captures the dynamic nature of a family and career that captured my heart and imagination and led to our ongoing journey today.



​[Shannon 쌤]
I was working as the Marketing Coordinator at a beachfront resort and I was terribly unhappy with my job. The location was beautiful, and that’s where the perks ended. I didn’t feel like my job was contributing anything good to the world and I wanted a change. My husband, who had worked at CAL EDU for a few years already, came home one day and told me that his boss wanted to speak with me about joining their team. I was immediately overjoyed because I had an inside look at the program through my husband, and I knew what amazing things they were doing to help students. Not long after that I joined the wonderful team of teachers of CAL EDU and I know that what we do contributes positively to the lives of many students and their families, which is the most important part of my job.



[Ted 쌤]
저와 CAL EDU의 첫 인연은 2003년 정한나 선생님과의 첫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학교 1학년을 마무리하고 있던 저는 대한민국 서울시 마포구 소재 영어 어학원에 등록하게 됩니다. 그 당시 강남과 목동의 유명한 어학원 선생님들을 초빙해서 야심 차게 개원했던 학원입니다. 야심 차게 개원했던 만큼 그 학원에는 상당한 학벌과 실력을 갖춘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자신감이었나 싶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제가 배우고 싶은, 수업을 듣고 싶은 선생님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웠습니다 (저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컸던 것으로 포장하겠습니다).

그 많고 많던 선생님 중 딱 한 분. 유일하게 딱 한 분이 저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긴 생머리에 높은 굽 신발. 한 손에는 리스닝 파트만 뜯긴 책과 다른 한 손에는 찍찍이라고 불리던 카세트 플레이어. 수업 시간이 다가오면 또각또각 들리던 선생님의 신발 굽 소리. 걸어 다니면 엄청난 오라를 뿜어내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말 걸기조차도 무서웠지만 말 한번 걸어 보고 싶고, 말 한마디 한마디 이 선생님이면 나의 영어가 완벽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발산하는 선생님, 바로 그분이 지금 CAL EDU의 대표인 정한나 선생님입니다.

정한나 선생님과 저의 인연은 벌써 20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 정한나 선생님을 만나 외고 입시 준비를 했습니다. 2005년에는 정한나 선생님의 결혼식에도 참석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도 영어를 배우다가 대학 입시 준비로 잠시 쉬었고, 고3이 되면서부터 다시 선생님을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2009년 대학교 1학년이 되었던 저는 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부터는 집과 학교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한나 선생님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9년에는 정한나 선생님의 조카를 안고 다니다가 젊은 애 아빠 소리도 들어보았고, 여름에는 함께 정한나 선생님의 집인 캘리포니아로 여행도 왔습니다. 안 만나본 정한나 선생님의 일가친척이 없을 정도로 선생님과 또 다른 가족으로 지냈습니다. 2010년 저는 군대에 가게 되었고, 그 무렵 정한나선생님은 2011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너무나 많은 제자를 잘 가르치시다가 미국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기로 한 이유를 여쭤보았고, 그때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은 어려움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하고,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은 너무나 쉽게 좋은 대학을 가. 내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은 바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인데 더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학생이 수업료를 입금했는지 안 했는지 개의치 않고 학생의 성공을 위해 지도하셨고, 그 누구보다 무서운 선생님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가슴 따뜻했던 선생님을 자주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에게는 참 슬픈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한나 선생님과 제 인연은 훨씬 더 질겼습니다. 군 제대 후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에 자리를 잡은 선생님의 새 보금자리에서 저도 어학연수생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 그때 저의 회화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소중한 저의 피 한 방울 안 섞인 형이자 회사 동료인 J 선생님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을 진학하였고, 공부를 마친 2017년 1월 1일부터 예전에는 CC2UC였던 CAL EDU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겐 박사과정 진학이라는 저의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그 꿈을 접어야 했고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제가 꿈꿨던 것과는 다른 방향일 수 있겠지만 저의 전공도 살릴 수 있고 그 누구보다 보람찬 삶을 살 수 있는 일인데 함께 해줄 수 있냐는 정한나 선생님의 제의로 CAL EDU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7월에는 CC2UC가 한국에 진출하였고, 그 사무실의 첫 담당자 역할을 맡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2018년에는 CAL Korea의 설립과 기반을 다져나가는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CAL EDU에서 재무 행정처리와 학생을 지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배우던 제자에서, 선생님을 옆에서 도울 수 있었던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결국은 CAL EDU의 동료가 되었습니다. 정한나 선생님께 배웠고,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알고 있고, 회사의 설립부터 성장까지 옆에서 조금씩 도우며 계속 지켜보았던 저에게 CAL EDU의 합류 결정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했고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루하루를 학생을 지도하며 느끼는 보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CAL EDU에 선생님들은 저처럼 모두 이렇게 특별한 인연으로 서로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대체될 수 없는 인재 육성” 바로 이 CAL EDU의 비전도 저희 선생님들의 인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덧 회사에서 일한 지 7년이 되었고 앞으로도 저의 CAL EDU 삶은 계속됩니다.
 


​[Darren 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런 우연이 있나 싶을 정도로, CAL EDU와 인연을 맺게 된 그 상황이 아직도 너무 신기하면서 감사합니다. 저는 2015년,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에 미국에서 간호사를 하겠다는 꿈 만을 품을 채 용감하게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미국에 살면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이끌려 도착한 지 삼 일도 안 돼서 현실을 마주하고는 Grossmont college라는 대학교에 소속된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주중에는 학교에 다니며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한인교회에 출석했는데, 한 삼 개월쯤 지났을 때 한글학교 선생님으로 이민 2세대 아이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냐는 목사님의 권유를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주중에는 공부로, 주말에는 한글을 가르치며 보낸 지 일 년, 과연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한 창 하던 어느 날, 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느 때와 같이, 한글학교를 마친 뒤 잠깐 목사님 댁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바로 그날 목사님 아들의 대학교 관련 상담으로 방문하신 정한나 선생님과 정사라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상담을 마치신 뒤 그냥 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 거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저에게 “너는 뭐 하는 애니?”라는 질문을 던지시고는 회사에 한 번 오라는 말씀과 함께 떠나셨고, 그렇게 저와 CAL EDU의 인연이 시작되게 됩니다. 결국 다니던 어학원을 그만두고 CAL EDU 학생으로 선생님들 밑에서 지도를 받으며 전에는 상상도 못 한 명문대인 UC Berkeley와 UCLA에 합격하는 기쁨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학생이었던 저를 선생님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2년 전에는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지금은 Subject coach로써 학생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Jan 쌤]
CAL EDU를 공식적으로 처음 접했던 날은 2018년 여름,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였지만,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은 2005년 1월이었습니다. 토플 공부를 위해 등록했던 학원에서 저에겐 제일 어려웠던 Writing 과목을 담당하시는 정사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영어도, 쓰는 것도 별 흥미가 없었던 저였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 수업 시간 재미있는 소재로 Writing이라는 분야에 대한 편견을 깨 주셨던 정사라 선생님 덕분에 작문에 대한 두려움도, 거부감도 쉽게 사라졌습니다. 저희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 주시고 함께 토의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도와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그 때의 친구들과도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정사라 선생님 덕이 큽니다. 매 년 기쁜 일과 슬픈 일들을 함께 나눈 지가 어느 덧 18년째 입니다. 그 해에 선생님의 초대로 정한나 선생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인연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정사라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스승이, 멘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키웠습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뛰어나지 않은 학생이었음에도, 아니 학생이었기에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선생님을 알고 지낸 16년 내내 한결같이 저희의 말에 귀 기울여주시는 모습을 보고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습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고민할 때에도, 임용고시를 공부하면서도 항상 같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선생님께 오랫동안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시고, 올바른 방향을 이끌어주셨던 선생님을 그대로 닮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학원에서 5년의 경력을 쌓고, 이 후 공립 중학교 영어 정교사로 7년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중간 중간에 정사라 선생님과 만나면서 CAL EDU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곳에 와서 꼭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총 12년이라는 짧지만 긴 강사 및 교사의 경력과 노하우를 담아 올해 3월 미국으로 넘어와서 CAL EDU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정사라 선생님과 정한나 선생님을 꼭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고, 누구보다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란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을 넣는 것이 아닌 학생 한 명 한 명과 교감하고 공감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말해주는 직업이기에, 이걸 다 이룰 수 있게 해주는 대표님, 동료들, 그리고 학생들을 만나 정말 행복하게 CAL EDU에서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Jeff 쌤 & Erin 쌤]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계신 고모부, 고모와 연락이 닿았고 막연하게 미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당시 영주권이 없었기에 물론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고 포기를 하고 있던 차에 무척이나 감사하게도 영주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먼저 미국으로 놀러 한번 와 보는 게 어떻겠냐고 고모부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2018년 4월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CAL EDU가 단순히 학업적뿐만 아니라 인성적으로도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곳이라 느끼고 있던 중 고모부와 고모께서 “우리는 이제 나이도 있고 평생 꿈꿔 왔던 세계여행을 위해 우리를 대신해 일을 해 보지 않겠니?”라며 제안해 주셨습니다. 저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무비자로 무작정 떠난 짧은 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그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인 아름다운 상은이와, 상은이의 부모님께 제가 앞으로 일할, 이미 성공적 귀로를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를 확신하는 CAL EDU의 기업을 설명하였고 행복한 미국 생활을 해주겠다는 다짐을 드렸습니다. 그 후 결혼식을 하고 영주권을 받기 위한 1년의 시간을 거쳐 2019년 9월 영주권을 받아 미국으로 입국하였고 그렇게 저희 부부는 CAL EDU 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Mason 쌤]
2017년 여름 제가 17살의 나이였을 때 인터넷을 통해 당시 CC2UC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지금 이 회사와 처음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한창 학업과 학교생활에서 오는 여러 스트레스와 더불어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을 하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이후 2학기가 시작되는 시점 혹은 그사이 어느 때부턴가, 점점 저에게 공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미국으로의 “이민”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찾고 또 찾아본 여러 웹사이트들의 열에 아홉은 유학 이후 정착하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취업이 가장 잘 된다던 UC 컴퓨터 사이언스 학과를 목표로, 100여 개가 넘는 커뮤니티 컬리지 중 편입하기 가장 적합한 학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한 대학생이 미주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작성한 포스트를 보고 클릭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CC2UC라고 불리는 회사를 추천하는 댓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저는 CC2UC를 검색하여 찾은 웹사이트를 찬찬히 훑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유학원일 것으로 생각했던 제 예상과는 달리, 웹사이트에서는 유학원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고, “가족, “대체될 수 없는 인재” 등과 같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호기심에 이끌려 적혀있는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취했고, 그날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한번 와 볼래?”, 회사의 대표인 정한나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셨습니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목소리를 들은 지 1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들었던 이 말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결국 학업에 지친 저는 자신에게 잠시 여행을 가봐야겠다는 핑계를 대며, 비행기를 올라타 캘리포니아 오션사이드에 위치한 CC2UC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사무실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저는 “이곳이다”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각자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과 그사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어오는 학생들의 궁금증들을 해결해 주시는 선생님들, 그리고 놀 때에는 오늘이 세상의 끝인 듯 열심히 노는 학생들을 보고, 이곳 선생님들과 함께라면 제 꿈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해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저는 마침내 2018년 12월 1일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제가 다니던 학교 그만두고 공식적으로 CC2UC와 학생의 신분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엊그제같이 생생한 지난 2년간, 학생으로 지내면서 크고 작은 해프닝들도 많았고, 울고 웃을 일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저는 모든 측면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했고, 학생 때 보인 제 수학 실력을 좋게 봐주신 한나 선생님 덕분에, 2020년 올해 5월에 다시 한번 Academic Coach로서 선생님들과 더욱 길고 뜻깊은 여정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연찮은 기회로 출발한 저와 CC2UC의 인연이 이제는 학생이 아닌 CAL EDU의 한 명의 Staff로 거듭날 수 있게 된 지난 3년을 요약하자면, 정말로 감사의 연속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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