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aches’ Chatroom

CAL EDU의 소식과 코치들의 생각을 전해드립니다.

Coaches´ Chatroom

"어떤 순간에 코치/선생님으로서 뿌듯함을 느끼시나요?"

페이지 정보

  • Name CAL EDU
  • Date 23-05-23 17:20
  • Comment 0
  • Hit 270

본문

[Hannah 쌤]
저희 회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으신 분 바로 총괄고문이자 모든 학생들과 스텝들이 “아버지/아버님”이라고 부르는 분, 정헌권 님이 바로제가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하신 분께서 저희 자매를 보시며, 사위를 보시며 항상 하시는 말씀은, “난 정말 너희들이 귀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 참 보람 있고 대단한 일을 하는 거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을 하는 거잖니.”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후에 나른하고 힘들 때마다, 밤에 할 일이 많아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될 때도, “난 한나쌤이야. 난 힘을내야해” 라고 주문을 외우곤 합니다.

학생들이 “쌤!” 하고 제 사무실로 들어올 때마다 그 한 단어가 주는 에너지는 대단합니다. 부족하고 모자랐던 나를 그때 그때 일으켜 세워 주시고, 돈으로도 얻지 못하는 기회를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수 많은 내 인생의 쌤 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의 은혜를 하루하루 갚아나가는 방법은 바로 나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는 것 입니다.

크고 작은 기억들은 차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지만, 제자의 결혼식에 초대 받았을 때 저는 그렇게 눈물이 나고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처음 보는 신부가 갑자기 드레스를 부여잡고 달려 나와서 제 손을 꼭 잡고 “정한나 선생님이시죠?” 라고 물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신랑에게 너무 많이 들었다며… 순간 옆에 서 있는 듬직한 신랑이 어렸을 적에 잘해준 것 보다 혼낸 것만 떠오르며 후회를 했었더랬지요. 참으로 많은 제자들이 결혼 전에 저의 오케이를 받아야 한다며 짝꿍들을 선보여주려고 올 때도 있었고요. 고작 40대 초반이지만 워낙 어릴 적에 일을 시작한 덕에 장성한 제자들도 많고, 아직 뭐 하느라 결혼한 지 15년이 지나도록 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은 미루고 정들면 떠나버리는 “기간제 자식” 들만 수없이 키우고 있네요. 
 
아버지가 절 자랑스러워 하실 때, 학생들의 인생에 잊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전 한나쌤으로 불리는 제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회사가 성장하고, 저보다 더 열정이 넘치는 젊은 쌤 들이 제 일을 더 잘 맡아 주셔도, 전 정한나 대표님 이라는 영 닭살 돋는 호칭보다 한나쌤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J 쌤]
One of my favorite stories to tell involves one of our earliest students, Scott H., and the complete transformation he made in his life, maturity, and perspective over the years. He began his journey with CAL EDU back in the spring of 2012 as a young man, and he himself would chuckle to remember what he was like back at that time.

When Scott first joined our program, to be honest, we had some serious questions about his ability to succeed on the path we were putting in front of him. He was young, had poor English skills, and struggled to adjust to the demands of our program. As part of my daily and weekly conversations with him, it was a huge challenge for him to move beyond the phrases and sentences he loved to repeat: “Yes.”, “I really like it.”, “It was a great time.”, etc. Likewise, he often felt overwhelmed by his college coursework, as well as the vocabulary words we had him study and the presentations he had to deliver for our program in order to develop his English abilities.

Despite these obstacles and his frustrations, Scott persevered. Even when he had to redo his assignments and essays dozens of times in order to properly follow instructions or develop the proper quality of work, he consistently worked as hard as he could. His resilience and willingness to listen and try again are two of the traits that I clearly remember and credit to his success: he was accepted to UCLA in 2014 and would soon go back to South Korea to complete his military service as a translator at the DMZ.

This background is what leads to a moment I will never forget. In early 2017, I was blessed to travel to South Korea for the first time (with our staff members) and more deeply connect with the culture of our students and CAL EDU family. While I treasure the experiences of that trip, some of the most valuable memories from that time come from being able to spend some time again with Scott. At the time, he was on a brief leave from his military service, and he only had about a week left before he had completed his duty. Now, as you might understand from the background I gave above, the Scott we all remembered as teachers was still a young man who was still developing in his maturity, English, and academic skills. Yet the Scott who appeared in front of us on that trip blew us all away.

Thoughtful, focused, and with a shocking command of English, it soon became evident that the man in front of us had applied the lessons given by both us and his other life experiences to the best of his abilities. And like a flower stretching towards the sun after a long winter, he was blooming delightfully towards a beautiful future. I still remember how impressed and proud I felt as we discussed his experiences and life while around the International Finance Mall in Seoul before he traveled back to complete his military service. Unsurprisingly, Scott would go on to do wonderfully in finishing his academic career at UCLA, and after graduating and obtaining his green card, he quickly found work in northern California. In recalling these memories and his story, I know I also speak for our other teachers when I say that I will always remember him, and bearing witness to his journey and transformation has solidified my love of teaching.



[Ted 쌤]
2017년 4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고 약 4개월쯤 되던 무렵 학생들의 첫 합격 파티에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실제로 지도를 한 적도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합격 파티였는데 그 합격의 현장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 선생님들이 왜 일을 하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현장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을 보았을 때 보람을 느끼며 그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선생님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 일은 정신적인 피로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단순히 몇 시간 학생을 만나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학생의 생활에 최대한 밀착해서 끊임없이 지켜보고 때문입니다. 저는 2017년 하반기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는 한국의 서울사무실에 체류하면서 CAL EDU의 신입생을 담당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학생활을 처음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중고등학생 티를 벗겨내는 일을 주로 해 왔습니다. 학교에 학비를 결제하는 방법, 교수님께 이메일을 쓰는 방법, 이메일 아이디 만드는 법, MS Office 프로그램 다루는 방법, 학교에 과제를 제출하는 방법 등 말그대로 아주 기본기부터 가르칩니다. 늘 주어진 수업시간표에,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답이 정해진 과제만을 하던 수동적인 공부 습관에서 수강할 과목을 정하고, 교수님이 제공하신 텍스트를 읽고, 답이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야 하는 대학교의 자기 주도적인 공부 습관으로 바꾸는 것이 저를 비롯한 첫 학기의 CAL EDU 학생들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언어를 전달하는 방식, 사용하는 어휘, 말본새, 교우관계, 기숙사 생활태도 등도 지도합니다.

학생 한 명이 와서 저와 가지는 교류는 단순한 강사와 학습자가 아니라 학업부터 생활태도까지 지도하는 선생님이자 상담가이자 사감이자 인생 선배인 CAL EDU의 선생님과 한 개인의 인생을 코칭 하는 깊고도 넓은 관계입니다. 이런 교류를 통해 학생이 작지만 제가 했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신경 써주는 것이 보이고, 그것이 결국은 그 학생의 좋은 습관으로 남았을 때 저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학생들의 크고 작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매일 보람을 얻고 그 보람을 느끼는 매일 매일이 저에게 선생님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됩니다.



[Jan 쌤]
아르바이트부터 따지면 선생님이 된 지는 2006년을 시작으로 17년차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학생들을 만났고, 수많은 상황들을 겪으며 느낀 점 또한 많이 있지만, 선생님으로서 제일 뿌듯함을 느낄 때는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저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가 조금이라도 보일 때 입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영어만 가르치면 되는 상황은 없기에 다양한 상황을 직면해야 했습니다. 수많은 힘들었던 상황 중에 저를 버티게 한 건 제가 믿어주는 학생들의 긍정적인 변화였습니다. 매일같이 사고를 쳐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저와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며 저를 믿어주고, 그만큼 성장해 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힘들었던 날들을 다 잊을 정도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지난 7년간 학교에 재직하면서 유일했던 제 철칙은 “학생들에게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내’가 그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영어 과목이든 담임이든 동아리 지도 교사이든, 학생들이 믿고 따르는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교사를 믿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학생들이 알아서 마음을 열어주고,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백 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자랑을 하러 오는 아이보다, ‘초등학교 때 알파벳을 공부하지 못해서 영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데 조금만 도와주세요’ 하며 오는 아이를 더 반겼습니다. 매일같이 거짓말을 쳐도 ‘선생님은 널 믿는다’라는 꾸준한 믿음에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에요.’ 라고 말을 해주며 실천하려 노력해 주는 아이에게 더 눈길이 갔습니다.

애초부터 공부를 잘하고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는 친구들은 제 도움 없이도 잘 한다는 것을 알았고, 저의 시선과 관심은 자연스럽게 제도 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로 향하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이 아이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뿌듯함에 가르치는 직업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주위 선생님들은 뭐 이렇게 피곤하게 담임 일을 하냐, 수업 준비를 무엇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 라며 질책하기도 했지만 거의 매년 교원평가에서 만 점을 받고, 많은 학생들이 매 년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것을 보고 느끼며 이 직업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런 에너지를 가지고 CAL EDU 에서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과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해 함께하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